[인터뷰] ‘강남 1970’ 이민호, ‘판티지’ 버리고 ‘수컷 본능’ 잡았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배우 이민호는 여심의 판타지를 완성하는 캐릭터였다. 이미 ‘꽃남’부터 그는 완성형 판타지의 결정체였다. 비주얼이 우선 그랬다. 그냥 있는 그대로 만화를 찢고 나온 이른바 ‘만찢남’이었다. 연기도 나무랄 데 없었다. 눈빛과 말투, 연기톤 무엇보다 이민호 자체가 그냥 ‘청춘 멜로’의 다른 이름이었다. ‘상속자들’에서도 그 힘은 이어갔다. 이견이 필요 없는 이민호였다. 그래서 그가 유하 감독과 손을 잡았다고 했을 때 “왜?”란 의문형 부호를 달아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유하 감독은 한국형 느와르의 개념을 세운 이른바 ‘폭력 시리즈’의 시작점이었다. 더욱 눈에 띄는 점은 ‘말죽거리 잔혹사’를 통해 권상우를 배우로 올려세웠고, ‘비열한 거리’를 통해 조인성의 스타성에 방점을 찍은 인물이다. 어쩌면 대중들이 알지 못하는 이민호의 진짜 매력은 판타지가 아닌 수컷의 본능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강남 1970’의 주인공 ‘김종대’역에 유 감독은 이민호 외에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하니 말이다.
개봉 전 만난 이민호는 조금은 들뜬 감정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충분히 그럴만 했다. 자신의 기존 이미지와 완벽하게 반대에 서 있는 인물로 스크린 나들이에 나섰다. 결과물도 의외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다. 분명 연출자 유 감독의 힘이 컸다. 하지만 진짜 힘은 오롯이 이민호의 것이었다. 유 감독 역시 ‘강남 1970’은 ‘김종대’의 얘기며, 주인공은 이민호라고 분명히 점을 찍고 시작했다. “어떤 연기 변신을 위해 선택한 작품은 아니에요. 만약 그런 욕구가 있었다면 ‘상속자들’부터 선택하면 안됐죠. 글쎄요. 아직 20대이기에 그런 강박 관념은 크진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언제나 여성분들이 원하는 달달한 연기만 할 수는 없잖아요(웃음). 그렇다고 일부러 남자다운 얘기를 찾은 것도 아니고. 그냥 생각해보면 막연히 20대 후반에 영화를 해야겠단 생각은 있었죠. 그게 ‘강남 1970’이었고, 유하 감독님이 연출하시잖아요. 하하하.”
이민호는 이번 영화에 자신이 만족스러울 정도로 완벽한 준비를 하고 합류하지는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상속자들’이 끝난 두 달 반의 여유가 있었지만 이미 예정돼 있던 중국 스케줄이 임박해 어쩔 수 없었다고. 대신 액션 스쿨 선생님을 대동하고 스케줄이 있는 곳을 옮겨 다니며 호텔 등에서 틈틈이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번 영화를 통한 저의 진짜 목표는 흥행도 분명하지만 남성팬을 좀 만들자에요. 하하하. 제가 남성 팬들이 없잖아요(웃음). 그동안 해온 드라마가 전부 여성 취향이다 보니 좀 그런 부분에 대한 갈망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아마 남성분들이 보시면 액션 만큼은 정말 기대감 이상이라고 보시면 될 듯해요. 그건 정말 자부합니다.”
이번 영화 속 액션의 백미는 당연히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진흙탕 집단 패싸움 장면이다. 수십 명의 사내들이 붉은 색 황토 진흙탕에 뒤엉켜 구르고 뒤엉킨다. 완벽한 합이 이뤄진 멋들어진 액션이 아니다. 정말 문자 그대로 날 것 그대로의 액션이 등장한다. 살기 위해 상대를 죽여햐 하는 숨 쉬는 액션이 이번 ‘강남 1970’ 속 진흙탕 액션의 묘미이자 백미다.
“정말 힘들었죠. 진짜 도망치고 싶을 정도였어요. 하하하.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그게 힘든 건지를 몰랐죠. 그런 장면을 해본 적도 없으니 그냥 ‘다 이렇게 하는 거구나’란 것 정도였어요. 그래도 죽을 맛이었어요. 다른 선배님들한테 들으니 감독님이 원래 액션 장면에선 거의 배우들을 끝까지 몰아가서 찍으신다고 하더라구요. 진짜 끝이었요. 하하하. 그 장면만 딱 일주일을 찍었는데 십 수 년을 액션만 전문으로 해오신 액션 배우분들도 ‘진짜 죽겠다’고 하실 정도였죠. 그럼 어느 정도인지 아시겠죠. 일단 보세요. 하하하.”
사실 이 장면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도 문제였지만 코를 찌르는 듯한 악취가 문제였다고. 비가 내리는 진흙탕이 배경이라 흙 밑에 있는 퇴비가 올라와 흡사 거대한 재래식 화장실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고. 총 150명이나 되는 배우들이 촬영 후 알레르기로 고생을 했다며 웃는다. 그래도 우산으로 펼쳐 보이는 액션 장면은 단 두 번만에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며 자랑한다. 그는 잠시 유 감독과 상대역이 김래원에 대한 얘기로 넘어갔다.
“사실 시나리오를 보면 래원이형이 맡은 백용기에 대한 욕심이 더 날 수 밖에 없어요. 저도 그랬죠. 그래서 감독님한테 용기에 대한 분량이 좀 늘리고 얘기의 중심을 많이 옮기면 어떨까란 의견도 제시해 봤어요. 그러자 감독님이 ‘그럼 비열한 거리가 된다’라고 하시더라구요. 결국 제가 돋보인 것도 래원이형의 희생이 너무 크단 거죠. 진짜 형한테 너무 고맙고, 형한테 배운 것도 진짜 많아요. 정말 끝내주는 배우에요. 형은.”
그렇게 이민호는 김종대에게 집중했다. 이민호는 지금껏 어떤 결핍이 있는 캐릭터를 연기한 적이 거의 없다. 항상 0.1%의 극소수자 혹은 그 이상의 부를 소유한 판타지가 이민호의 차지였다. 그 점이 ‘강남 1970’ 속 이민호가 집중해야 될 과제였다.
“래원이형이 연기한 백용기는 확실하게 드러나는 감정선이 있지만 종대는 드러나는 점이 거의 없어요. 그냥 억눌린 감정? 그 감정을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감성을 표현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깊게 들어가니 분명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죠. 큰 틀은 감독님이 만들어 주셨고 전 그 안에서만 찾아야 하니 어렵진 않았어요. 대신 계속 누르고만 있던 감정 때문에 불편했는데 영등포 입성 장면 이후 뭐가 탁 풀리는 느낌이 오더라구요. 하하하.”
이번 영화의 진짜 화제는 너무도 강렬한 폭력성도 있다. 이미 유하 감독은 전작 두 편에서 수위 높은 폭력 장면을 연출했다. 이름도 ‘폭력 3부작’으로 붙여졌다. ‘강남 1970’ 역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을 정도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장면이 몇 장면 등장한다. 주연배우 이민호의 생각은 어떨까.“성인영화인데요 뭘. 하하하. 글쎄요. 전 당사자고 그 안에서 살다 와서 진인하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았어요. 대신 그 시대의 잔인성이 거 크다고 느낀 점은 있죠. 그 점은 영화를 보시면 분명 느끼실 수 있을 거에요. 1970년대 강남의 탄생 배경과 지금의 강남이 갖는 이미지의 충돌, 그리고 그 탄생 배경 속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 밖에 없는 폭력이라면 충분히 납득은 되죠.”
인터뷰 말미 이번 영화 속 의외의 포인트에서 웃음이 터진 장면을 언급했다. 바로 이민호의 넝마주의 변신이다. 1970년대 빈민가에서 자주 본 넝마주의로 극 초반 등장한 이민호의 모습에 유 감독도 “도데체 뭘 해도 망가지지 않는 모습에 고민이 많았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이민호도 넝마주의 복장 변신에 대해선 웃음 밖에 터트리지 않았다. “하하하. 그 장면에서 래원이 형과 서로를 보고 진짜 배꼽을 잡았죠. 사실 설득력에 대한 고민이 진짜 됐던 부분이 넝마주의에요. 옷도 최대한 지저분하게 입고 머리도 가발을 쓰고 분장을 했는데 의상팀과 분장팀 감독님이 진짜 한숨만 내쉬더라구요. 하하하. 그런데 영화 속에선 크게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올해는 중반기쯤에 드라마를 한 편하고 하반기쯤에 다시 영화를 또 하고 싶단다. 그는 “다시 영화 찍을 수 있겠나”라며 조금은 걱정을 한다. 아마도 올해 시상식에서 이민호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